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전투기/평가와 논란 (문단 편집) ==== [[장료(삼국전투기)|장료]] ==== 한때 장료가 주인공이었다고 밝히면서 장료만세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던 장료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해석하는건 오버고 '''작가의 최애캐'''라고 보는 게 합당할 것이다. 확실히 장료에 대해서는 많은 미화가 덧붙여졌다. 일단 소개란부터 A급 모사 운운은 사서는 물론이고 연의에서도 그 근원을 찾기 힘들다. 굳이 찾아보자면 [[삼국지평화]] 정도까지 들춰봐야 구색은 맞출 수 있다. 그밖에도 작가가 밝혔듯 장안성전투, 복양전투, 우이전투, 소패전투, 백마전투 등에서 허구에 가까운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다만 장료 사망시 이부분은 장료를 띄어주기 위한 본인이 직접 허구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백마에서 관우의 안량참살에 숟가락을 얹은 것 때문에 사람들 입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장료는 안량과 맞서고 관우는 '''장료의 등 뒤에 숨어 있다가 장료가 안량과 한합을 겨루자 장료의 등 뒤에 튀어나와서 안량을 벤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물론 당시 원소군은 조조의 의병에 걸려 혼란에 빠진 상태였기 때문에 온전히 관우가 대군에 우라돌격해서 안량을 죽인 것은 아니었고, 이 과정에서 함께 선봉으로 출진했던 장료가 뭐가 활약을 했을 수도 있다. 다만 이것은 순전한 추측인데다가 결정적으로 관우전의 자세한 서술에는 장료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편파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관점에 따라서는 장료의 등 뒤에 숨은 관우가 추하게 보여질 지경.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관우가 백마에서 보여준 무위만큼은 당대 최강으로 손꼽힐만한 포스였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묘사는 어떻게보면 연의와 정사의 절충이라고도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정사에서는 위의 구도가 반대로 나타나는데 사실상 조조군에게 죽은 문추를 관우가 죽인 걸로 공적 스틸이 일어났는데 그냥 스틸하기는 뭣했는지 장료와 양동으로 일어난 걸로 되어 있다. 즉 연의에서 문추의 죽음은 장료가 문추를 유인 → 장료가 문추와 창을 맞대다가 관우와 교대 → 관우가 문추 참살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걸 하나의 에피소드로 합치다보니 연의에서 문추의 죽음을 안량에게 덧 씌운거라고 볼 수 있다. 즉, 연의에서 장료와 관우가 협동 플레이로 문추를 날리는 모습이 꽤 인상적인 고로 이걸 남기고는 싶은데 그렇다고 해도 문추가 관우에게 죽은 건 아니므로 원래대로 안량을 죽이게 하되 합동 플레이를 펼치게 만든 것이다. 근데 그래서 역사대로 문추가 죽냐하면 문추는 이번엔 또 서황한테 죽는지라. 여기서도 또 아이러니한 점이 한 가지 발생하는데 정작 그 서황은 연의에서 안량에게 패퇴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사와 연의의 취사선택에 있어서도 은근히 장료에게 유리한 쪽으로 조합을 했는데, 예를 들어 장료가 태사자를 죽인 연의의 허구는 받아들이면서 장료가 정봉에게 죽는 허구는 반영하지 않았다. (삼전에서 장료와 정봉은 별 접점도 없다.) [[합비 공방전]] 당시 장료, [[이전(삼국지)|이전]], [[악진]]은 서로 사이가 나빴는데, 정사에서는 이전이 먼저 나서서 감정을 덮어두고 서로 화합하기로 했으나, 연의에서는 악진, 이전이 우물쭈물하는 것을 장료가 화합시킨 것으로 나온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이 부분은 연의로 반영했다. 패러디 캐릭터가 아닌 오리지널이라는 것만 봐도 작가의 장료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촉 진영과 달리 위진 쪽에서의 오리지널은 장료가 거의 유일하다. 여담이지만 장료는 169년 또는 171년생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최훈은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165년생으로 써 놓았다.[* 노국상이 된 시점(28세)을 192년으로 본 듯.]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